●안 본다 / 문학마을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그런 사람들이 좋았어 다른사람들이보기에는저게대체뭘까라는생각에즐겁게몰입하는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TV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곳에 끝없이 전파를 흘려온 우주와 관련된 인연 ‘우리만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13쪽)_프롤로그 안에 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라고도 썼지만 고등학교 때는 복도를 오가다 우연히 만나면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 친구를 아직도 기억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친구의 꿈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런 나와 달리 친구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꿈이 있었다. 천문학자가 되는 것 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꿈이 바로 천문학자라는 것이 신기하고 어딘가 감동했다. 그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정말 천문학과를 진학했는지, 그때 그 꿈과 얼마나 가까운 삶을 지금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자신의 꿈을 말할 때마다, 친구의 얼굴로 꾼 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이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그 친구를 떠올렸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친구를 알기 전에도 알고 천문학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막연히 별을 사랑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별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모르면서 또 막연하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천문학자에 대한 환상이 있는 사람에게 저자는 뉴턴을 보면서 천문학자의 꿈을 키웠다면 좀 멋있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9쪽)며 지금의 과제가 끝나기 전에 다음 생활의 길을 미리 찾고 나서(147쪽)라는 비정규직 연구자의 현실을 말한다. 일반인의 눈에 어떤 비유가 숨어 있는 듯한 책 제목을 저자의 동료들은 사실을 너무 적대시했다고 평했으니 아무래도 이 책은 천문학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낭만적 시선을 깨뜨리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 같다. 그러나 일반인의 환상에 어긋나는 천문학자의 현실을 아무리 얘기해도 천문학이 지닌 매력과 천문학으로 향하는 저자의 사랑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이 또 재미있다.무엇이 되려면,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고, 그리고 무엇이든지 하면, 무엇이든지 좋다고 인생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안개 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될 수는 있었다. (270쪽)

책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10번의 계절이 지났다. 계절이 멀어져 다시 돌아오는 시간의 대부분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이 책은 어떤 책인지, 이 책이 ‘무엇이든’되었을 무렵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소모했다. 그렇게 무진장했던 10가지 계절을 기꺼이 맞은 끝에 이 책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떤 의미도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271쪽)

_에필로그 속에서 아무래도 저자는 자신이 쓰는 책의 성격을 놓고 한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에게 이 책은 어떤 책이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니버스(universe)와 코스모스(cosmos), 스페이스(space)의 차이를 알려준 책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인 최초로 우주비행에 참가한 이소연 박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 책으로 지폐 하나에 천문학 관련 아이템이 세 개나 새겨진(215쪽) 한국의 자랑스러운 과거와 복잡한 현재를 일깨워 준 책으로 내가 내는 세금의 일부가 한국의 천문학 발전에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책이었다. 그리고 별을 사랑했던 내 친구를 잠든 기억 속에서 꺼내준 책이기도 했고, 그 친구가 꿈꾸던 천문학자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책이기도 했다. 전문서도 없고 교양서라도 아니면 어떨까. 잊었던 밤하늘의 별을 생각하며 한 번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책.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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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뿐 아니라 지동설을 주장하며 어려움에 처하거나 곤란에 처할까 봐 주장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중 하나가 코페르니쿠스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자료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며 자꾸 지동설로 귀결되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말년 잠자리에 든 후 자신의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43쪽)

석양을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나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왜 슬픈지 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는 게 43번째인지 44번째인지 추궁도 하지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의 환율도 묻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 때 해가 지도록 명령할 수는 없지만, 해가 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줄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용하다. (165쪽)

종이 달 리카가 처음으로 일생일대의 일탈을 저지르고 나오던 날, 앞으로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는 범죄의 눈덩이를 굴리게 될 미래의 기운을 막연히 감지하는 그 순간은 그믐날이어야 한다. 거대한 밤이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온 일상의 아침을 맞이하는 달이 초승달로 잘못 불린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다. 섣달 그믐날이 그런 달이다. 다행히도 지월의 한국어 번역본 표지에는 그믐달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187쪽)

그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위성 카론은 명왕성 위성으로서는 너무 커서 위성이 아닌 명왕성과 이중행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카론도 자신을 뭐라고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작은 위성 친구들과 중력을 교환하며 오래 멈추지 않는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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