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의 부부여행 여주 가슴에 간직하다!
뭐라고요?우리 둘이 여행을 가는 겁니까?언제인가요?정말이에요? 거짓말로 그렇다면 가만 두지 않겠어요!아내의 첫 반응이었다. 더구나 결혼하고 바로 위의 자녀, 그리고 2번째까지 나이이고, 낳아 기르면서 둘만 여행 갔던 기억이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선물처럼, 그리고 여주행이 결정됐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여주에 출발하는 날!!전날 사전에 내비게이션에서 약속 장소인 오지 절까지 거리가 얼마인지도 사전에 확인했던 곳이었다. 약 110Km…”경기도 여주시”으로 막연히 생각할 때는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의 거리와 실제 거리 사이에는 상당한 틈이 있었다. 문. 김·존슨 경영학 박사의 사진. 박·시 폰 차를 몰고 도로를 지나지만 역시 금요일은 막혔다. 내비게이션은 나름대로 노력했다. 자신 이외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부지런히 추천하면서 틈만 나면 경로를 바꿔서… 전날의 거리를 조사하고 예상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약 1시간 25분 정도였다. 그런데 금요일이라 지방에 내리는 행렬이 앞을 막아서자 조금씩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며 결국 약속 장소인 대로사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은 10시 10분이었다. 무려 2시간 10분도 걸린 것이다.좀 짜증 나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은 대로사에 도착하자마자 눈 녹듯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로사는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며 선비의 기상과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 같은 선비 정신의 기개를 담은 오지사비에 사는 조선의 성군인 정조 대왕이 여주 유생들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이고 건립한 송·시욜의 서당이다. 또 그 싱싱한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때도 비록”강한사”에 이름은 변하지만, 견고하게 제 위치를 지킨 곳이 바로 오지사이다. 도착하면 대로 절은 바로 뚜렷한 가을이 내려왔기 때문에 시원한 바람이 사당 속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보통 전통적인 것으로 말하면 유학생 기숙사인 동재과 서재가 있지만 오지 절에는 그것은 없었다. 오지사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도로 담길에 있는 쉼터였다. 여기서 장시간 운전하면서 쌓였던 피로를 풀다가 눈이 사무칠 정도 파란 하늘과 이런 구름을 본 적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만큼 폭신폭신한 하얀 구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 그렇다!이런 게 바로 여행이다!”서서히 아내와 저의 여행 감성이 발현하기 시작했다. 오지 사찰 입구에 있는 관리실과 예절 교육관을 관람한 뒤 오지 사비 있는 비각으로 향했다. 비각에는 대로 절의 내력을 적은 비가 있지만, 정조 대왕이 스스로 비문을 만들어 쓴 비석이다. 정조 대왕을 생각하면서 남한강이 보는 그대로 서원 강당과 송시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을 찾았다. 널찍한 정원과 남한강이 보이는 강당, 기개를 보이는 곧은 나무, 거기에 맑고 푸른 가을 하늘 같은 선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로 절이 조선의 선비들이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덕을 수양하며 인재를 배출한 시대 정신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아니나 생각했다. 다만 2달만 빨리 왔더라면, 대노사를 말할 때면 빼놓지 않는 능소 꽃에 만난 것들을 만나지 못한 점은 유감이었다.

우암 송시열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대로사를 둘러봤다.
빈 상가를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된 빈집 예술 공간 한국 경제가 발전할 정도로 도시의 인구와 경제력은 지속적으로 대했지만, 비도시 지역은 그 반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므로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대한민국 곳 곳에서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여주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여주시가 줄기차게 노력한 결과 한 빈집 예술 공간이 궁금했다. 여주시에서 빈집을 활용하고 빈집 예술 공간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에는 “빈집 예술 공간#1″과 “빈집 예술 공간#2″이 있지만 먼저 방문했던 곳은 “빈집 예술 공간#2″였다. 지하 1층~지상 층 건물로 지하 1층에는 공연 예술 훈련실과 커뮤니티 공간이 1층에는 복합 문화 전시실이 2층에는 시각 예술 훈련실과 커뮤니티 공간이 있었다. 운영 주체는 여주 세종 문화 재단이다. 여기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기획전은 물론 다양한 문화 및 연계 체험도 있고 공공 도시 재생을 위해서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 좋았다.이어”빈집 예술 공간#1″으로 향했다. “빈집 예술 공간#1″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전통 시장인 한글 시장 중앙로에 위치했다. 이곳은 원래 비어 있는 상점가였지만, 리모델링을 통해서 예술 공간으로 거듭났다. 중앙로 번화가 → 1구역 → 4구역에 직결되는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이 추진된 세종 시장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매우 크고 말할 수 있다. 1층 상가에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깨끗하고 귀여운 데다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어 다양한 전시 및 관련 강좌, 체험 프로그램 등이 상시 운영되면서 지역의 문화 거점 시설로서 본래의 역할을 했다. 여주시와 시민 단체, 시민이 하나 되는 모습이 “빈집 예술 공간#1″과 “빈집 예술 공간#2″로 구현됐다는 점에서 여주시 도시 재생의 미래가 기대됐다.

빈집은 여주 시내의 유휴 공간을 문화·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재창조한 곳이다. 순수 자연의 맛, 정진 요리의 거지의 여주인공이라는 도시의 정취를 취하고 도시 재생이 “빈집 예술 공간”으로 구체화되는 모습에 감탄한 결과, 어느새 배꼽 시계가 가차 없이 울렸다. 부랴부랴 오찬을 먹으러 갔다. “거지.”우리 부부가 점심을 먹으러 가던 식당 이름이다. 과거 유명했던 이·영동 PD의 “음식 X파일”로 인정한 정진 요리점이라, 사실은 매우 궁금했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정말 맛있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거지의 집에 도착했다. 사실은 정진 요리는 우리 부부 함께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 그래서 기대가 컸다. 한편으로는 도시의 입에 익숙한 사람들이 색다른 음식을 맛 보고 인사처럼 맛집이라고 말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메뉴는 아주 간단했다. 나물의 식탁, 그리고 추가로 돼지 고기 볶음과 솔잎의 얇은 고기가 전부였다. 선택 장애가 있는 우리 부부는 단비 같은 간단 명료한 메뉴나 다름없었지. 서슴없이 나물 밥 두 사람 전과 제육 볶음을 주문했다. 제육 볶음은 나물의 식탁에 대한 보상 성격이었으나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물의 식탁이 입에 맞지 않는 경우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 15분 정도 지나면 장이 세트 되고, 금방 밥이 나왔다. 도대체 어떤 맛이니 맛 본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을까. 그 의문은 첫모금 먹고 반찬을 밥 위에 올려서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해소됐다.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하면 될까? 50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 보는 맛이라 당연했다. 아내도 저와 다르지 않았다. 전혀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자꾸 젓가락을 끌어당기는 맛이었다. 궁금했다. 왜 이런 맛이 있는지.. 그래서 사장에게 궁금한 것을 들었다. 골 그지에은이의 집은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마을의 자란 사장의 어머니가 나물 장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어려서부터 나물에 익숙하고, 이왕이면 잘 알고 있는 것을 파는 장사를 하고 싶었으므로 정진 요리 식당을 운영하고 30년이 지났다는. 그 오랜 세월의 내공을 단지 고객을 위한 식탁을 인공 조미료가 전혀 없는 순수 자연의 맛을 충분히 담고 만들어 낸다고 한다.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거지의 집을 나섰다.
30년 전통의 사찰음식 전문점 골구쟁이나물 밥상차림.

가을의 그림이 느닷없이 나타난 에가와 섬(강 쵸은솜)와 요강길의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여행의 감성이 쏟아졌다. 제대로 맛있는 점심을 먹다 보니 여주장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 향했다. 바로 에가와 섬(강 쵸은솜)과 리장 길(요강길 1코스였다. 골 그지에은이의 집에서 차로 20여분 달리고 에가와 섬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급히 주차를 마치고 요강길 3-1코스를 해설자의 친절한 해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길가에 잡초도 아니고 익숙한 것처럼 새로운 다가오는 꽃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해설자 분!이 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해설자:아!단양 요모기브지에은이입니다. 아름답죠?환경부 지정 멸종 희귀 야생 식물 2급이래요. 작년에는 꽃이 별로 안 피서 걱정이었지만 올해는 예상외로 꽃이 많이 피었네요.아내:그럼 그 꽃을 꺾으면 처벌되나요?해설자:물론이죠. 환경부의 허가 없이 훼손하거나 반출하면 법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요강길 3-1코스에 진입했다. 여자 강은 ” 검은 깊은 강”이라는 뜻인데, 이 강을 통해서 한양을 오갔다고 한다. 여주에 조선 4대 나루터 가운데 새 우라 나루와 리포 나루터 2곳이 있었다니 그 지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지 사에서 만난 유난히 솜사탕처럼 새하얗고 깨끗한 저 구름이 여자 강의 길로 이동했을까. “아무리 푸른 캠퍼스에 새하얀 물감으로 채색을 하더라도 여자 에미치 위에 물든 하늘 같은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흙길에서 조성된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에가와 섬 힐링 센터에 이르렀다. 목련 나무 거리를 지나 엄청나게 넓은 초록의 잔디가 펼쳐진 이곳은 도시에 지친 우리 부부에게 형언할 수 없는 위안이 됐다. 갑자기”야~이런 곳에 스타벅스를 유치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관광객이 찾을 텐데.. 그렇게 되면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여주 쌀밥과 조화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도시의 어려운 삶에 지친 사람이라면 꼭 한번 방문했으면 좋겠다. 어린 아이가 있으면 넓은 잔디밭과 재밌는 동물 조각 작품이 들어 있는 에가와 섬은 선물 같은 공간이 되어 준다고 굳이 보증한다. 에가와 섬 힐링 센터를 거쳐서 주차장에 이르는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가을 소나기는 자칫 감기에 걸리기 쉽지만 여행 중에서 받은 소나기는 시원했다.
에가와 섬은 자연을 벗삼고 재충전할 수 쉼터 같은 곳이다. /10월 19일 열린 에가와 섬 힐링 센터 준공식 현장의 청정 자연 속에 위치한 여주 관광 농원(캠프 여주)에가와 섬과 리장 길이 3-1코스의 환상적인 풍경을 가지고 숙소로 가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에 급히 나와서 일단 숙소에 가기로 했다. 그래도 요강길의 단양 쑥 남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인상 깊었던 푸른 하늘과 구름, 은행 나무 힐링 센터, 파란 잔디, 조각 공원, 여강을 마음에 가득할 수 있으므로 마음이 넉넉했다. 에가와 섬의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달리면 숙소의 여주 관광 농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캠프 여주라고도 불리우는데 입구에 여주 관광 농원 낚시터도 있어 이채를 띠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보니까 조금 야영을 할 걸 후회도 했다. 캠프장에 최적화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잘 닦인 야영장인 동시에 넓은 잔디밭도 있고 어린 아이들도 마음껏 놀 수 있다는 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산 자락도 캠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묶는 곳은 야영장에서 없지 않은가. 정신 차리고 여관의 숙박 동이를 찾았다. 펜션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청정 자연 환경과 너른 잔디, 그리고 밤하늘을 더 비추는 캠핑 카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이건 비밀이지만 사실은 우리 부부는 피부가 약해서 잠자리를 많이 가리는 편이다. 그동안 한번도 캠프에 간 적도 없고 당연히 훈련과 캠퍼들을 부러워했던 것도 없었다. 그런 우리 부부가 캠프 여주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캠프 야영자를 부러워했다. 오마이 가. 우리 부부가 “이번에는 캠프에 꼭 한번 방문합시다!”라는 약속까지 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숙소 주변을 산책하면서 캠프 대리 만족까지는 호사를 누린 뒤 단란한 첫날을 마쳤다.
여주 관광 농원은 조용하고 아늑한 고향의 정취가 담긴 공간이라는 소개가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다. 고향의 뒷산의 추억이 떠올랐다 흥 오지(훙왕사)와 소 박달(소 달 산)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감기의 증상이 좀 있어 걱정하면서 잤으나 여주 관광 농원의 맑은 공기와 여주에서 경험한 공간이 발산한 힐링 에너지 덕분에 깨끗이 좋아진 기분이 들었다. 일찍 일어난 탓인지 배가 고프다. 그래서 여주에 가면 꼭 한번 가서 보려고 계획하던 서 다르 산 흥 오지에 길을 정했다. 개인적으로 우리 부부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로 내 탓이다. 군 생활 동안 한없이 산을 오르거나 내려가기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산행은 내게 별로 매력적으로 접근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흥 오지에 방향을 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흥 오지의 눈 앞까지 차로 오를 수 있고, 흥 오지에서 소 박달까지 15분 정도로 충분히 오를 수 있었다. 숙소의 여주 관광 농원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였다. 눈부시도록 푸른 하늘과 이런 구름을 본 적이 있나 할수록 편안한 흰 구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흥 오지를 방문하면 수령 300년의 은행 나무가 우리를 반겼다. 나무 주위가 몇미터나 되는 한아름의 은행 나무가 한치의 흐트러짐도 모르게 기품 있는 모습으로 서있었다. 위압적이거나 고압적인 그런 거대한 나무, 경외감을 느끼는 나무가 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흥 오지에서 느낀 분위기와 비슷했다. 흥 오지는 대단한 위세로 이곳을 찾는 속세의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사찰이라기보다 비밀과 세상의 아픔을 달래는 고향 뒷산에 있던 암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머리만 좌우로 돌리면, 사원 내의 모든 전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 박달 송림에 둘러싸인 절 흥 오지의 정취에 젖어 있으면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흥 오지로 향하는 돌 계단에 세월이 흐른 모습이 그립다. /서울 다르 산의 정상에서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여주의 가을 풍경이 보인다. ” 차가운 음료수를 한잔 드릴까요 ” 뒤돌아보니 스님이 섰다. “아니요, 스님. 그냥 잠시 가을의 흥 오지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짧은 소 달 산 등산에 나섰다. 어느 의미, 등산과 이름 붙이기 힘들 정도로 길지 않은 거리였다. 풀숲을 조금 헤치고 지나가자마자 등산로에 합류할 수 있고 그렇게 10분 정도 발을 옮기면 정상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행 시간이 등반을 통해서 얻어지는 감동의 크기와 비례하지 말 것이다. 서 다르 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여주시의 풍경은 노란 논과 밭,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조화롭게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명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임금에게 진상한 쌀로 유명한 지역이라고만 생각했던 여주시는 표면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발로 밟아 보고 눈에 넣는 여주시는 생동감이 넘치는 풍경이 말로는 표현 못할 정도로 인상적인 본질적인 공간이었다. 곧 지금은 성인이 된 두 아들과 함께 꼭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에가와 섬 요강길과 함께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도 꼭 한번 찾아보자.———————————————————————————–
김정선 경영학 박사, 장안대 강의교수, 부동산분석가, BSI 경영연구원장. 경제일반과 부동산, 재테크 관련 작가로 30여 권의 서적을 집필했고 최근 윤석열 정부부동산시장 대해부(2022년, 6월, 김정선 외)를 출간했다.
김정선 경영학 박사, 장안대 강의교수, 부동산분석가, BSI 경영연구원장. 경제일반과 부동산, 재테크 관련 작가로 30여 권의 서적을 집필했고 최근 윤석열 정부부동산시장 대해부(2022년, 6월, 김정선 외)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