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4,1957 CE: USSR Launches Sputnik On October 4,1957, the USSR launched Sputnik, the first artificial satellite to orbit Earth.
1957년 10월 4일 소련의 SPUTNIK(스푸트니크) 최초의 인공인성 발사 성공 이후
미국은 1958년에 NASA(NASA) 설립하게 됩니다.
소련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이 위성이 발사될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이라고 불리던 준전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 국민은 스푸트니크 발사 후 패닉에 빠졌습니다.자신들이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 세계 제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소련이 우주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면 거기서 핵무기를 우리 머리 위로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느냐.「가 그 이유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꼼짝도 못하고 소련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실현시킨 무기가 ICBM입니다.
스푸트니크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충격을 받아 2개의 국가기구를 설립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들 기관이 DARPA[와 NASA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3일, 미국은 다시 패닉에 빠집니다.소련이 세계 최초로 우주에 생명체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개이긴 했지만, 그것은 소련과 미국의 기술력의 차이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밀릴 수 없다는 데 동의하고 대대적으로 로켓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그 결과 미 해군은 뱅가드 로켓 계획을 빠르게 진행하여 그해 12월 6일 뱅가드 TV3를 발사했는데 로켓은 1m도 오르지 않고 발사대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4초 만에 로켓이 폭발하는 것을 전 세계에 자랑해 버린 미국은 큰 굴욕을 겪게 됩니다.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한 소련의 유리 가가린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성공시킨 소련은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을 성공시키기 위한 계획을 수립합니다.
당시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수석 기술자가 보스톡 1호 캡슐에 들어갈 우주비행사 조건을 정했지만 몸무게는 72kg을 넘지 않아야 하고 키는 170cm보다 작아야 했습니다.
가가린은 키가 매우 작고(157CM) 가벼웠기 때문에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평가되어 보스톡 계획의 우주비행사 양성 프로그램 신체검사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그는 작은 키 때문에 공군 비행사가 될 수 없을 뻔했지만 우주비행사로 뽑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우주비행사 후보생은 3,000여명의 공군 조종사를 대상으로 선발된 19명이었는데, 가가린은 여러 비행 실력, 신체적 조건, 집중력, 그리고 인성까지도 이들 중 최상위권이었고 게르만 티토프와 함께 최종 선발됐다.티토프는 가가린에 이어 두 번째로 우주 비행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68년 7년 만에 두 번째 우주 비행을 준비하던 유리 가가린이 갑자기 사망합니다.비행훈련 중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하게 됐다고 발표했지만 소련은 이 사고와 관련된 원인을 1급 비밀로 해놓고 비행기 잔해조차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소련 정부의 희생이 되었는지… 지금도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게 됩니다.
그 후 미국 천문학적인 투자의 결실을 맞이합니다.
1969년 7월 16일 미국 아폴로 11호를 탄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의 달을 밟게 됩니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가게 된 사람은 3명이었지만 닐 암스트롱(선장사진 왼쪽)이 처음으로 달에 착륙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다른 2명의 마이클 콜린스와 에드윈 올드린의 이름도 기억해 두세요.하지만 사진 한가운데 있는 마이클 콜린스는 달 궤도를 돌며 명령 모듈 역할을 했고 달을 밟지 못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안타깝네요。
세계 최초로 1957년도에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고 1961년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여행을 성공시킨 소련.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2022년 현재는 세계에서 11번째 대국이 되어 경제력과 기술력뿐만 아니라 국방력까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대국이 된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