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 – 가을을 남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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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위키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가수는 몇 곡의 히트곡을 내며 한 시대를 지배한 대형 여가수 패티김입니다.

패티 김은 1938년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 중앙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패티 김은 1956년 총리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입상해 데뷔했고, 2년 후 1958년 미 8군 무대에서 가수 이혜영과 듀엣으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데뷔 당시 예명은 “린다 김”이었지만 1959년 초에 미국 여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 현재의 예명으로 바꿨습니다.패티김의 등장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그 스타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해나가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가수 전설적인 디바로 한국 현대 대중가요사에서 수많은 ‘최초’와 ‘최고’ 타이틀을 획득하며 스탠다드 팝의 선구자인 이미자현미, 이금희, 한명숙, 최희준, 윤복희와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명가수이자 디너쇼 여왕입니다.

해방 후 1960년 일본 시장에 처음 진출한 것을 비롯해 한국 가수 두 번째 미국 시장 진출, 한국 여가수 최초의 미국 카네기홀 공연, 한국 가수 최초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연 등 사실상 현재 한국 가수가 이룬 해외 경력을 모두 시도한 가수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물론 시도에 의의가 있고 자서전에서 밝힌 것처럼 그렇게 격려가 된 것은 아닙니다.

동양 여성으로서 혼자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패티 김은 2013년에 긴 가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그녀는 몇 곡의 히트곡을 냈고 누가 뭐래도 한 시대를 지배한 대형 여가수였습니다.

첫 소

이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생명의 꽃

서울의 찬가

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같은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패티 김은 스탠다드 팝 중심의 세련되고 서양적인 정서가 많은 노래와 세련된 도시적인 분위기로 불렀습니다.

2010년에는 고인이 된 박충석 작곡가의 추모특집으로 방송된 아침마당에 나온 적이 있으며, ‘나는 대중가수’이지만 ‘이미자는 국민가수’ 다나와 비교할 수 없다며 세간의 불화를 일축시킨 바 있으며,

패티 김 본인의 은퇴 당시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같은 가요계를 걸어온 파트너일 뿐 라이벌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축했습니다.

패티김 다리 들어볼게요.^^

패티 김은 1966년 길옥윤과 결혼했지만 1973년 이혼했고 1976년 이탈리아인 아르망도 게디니와 재혼했습니다.아르망도 게디니와는 백년해로 중입니다

“밑에 2녀가 있는데 첫째 딸 채정아는 전남편 길옥윤의 딸이고 둘째 딸 카밀라 게디니는 파티킴이 이탈리아인인 현재 남편인 아르망도 게디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패티킴 ‘이탈리아’라는 자동검색어까지 있습니다.

왼쪽부터 첫째 딸 최종아의 남편 아르만도 게디니의 둘째 딸 카밀라 게디니의 최정아와 카밀라는 아버지가 다른 이복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친자매 이상으로 좋은 우애를 과시하고 있고, 최정아는 새아버지 알만도에게 새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진심 어린 효도를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녀 최정아도 영국 백인 사위 윌리엄스와 결혼했기 때문에 패티 김의 후손은 장녀 최정아를 제외하고 모두 백인 혼혈이 되었습니다.다만 첫째 딸 최종아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대물림주의 국적법으로 전환되어 1998년 6월 14일생부터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출생국과 관계없이 한국 국적이 부여된다고 합니다.둘째 딸 카밀라 게디니는 이탈리아 하프에서 뛰어난 미인에 키까지 크고 모델을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졌으며 2003년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당시 가수 패티김의 딸이라는 점이 화제가 됐고 데뷔하기 전에 팬클럽이 형성되는 등 반응이 좋았고.데뷔 앨범 역시 당시 유명했던 유정연 업타운 정영준 러브홀릭 강현민 등 유명 프로듀서진이 대거 참여해 화제가 됐습니다.하지만 미국 정서에 맞지 않는 한국 연예계의 시스템과 문화를 매우 어렵게 생각하고 자신의 음악 지향점과 맞지 않는 장르를 강요당하는 등 한국에서의 음악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결국 1집을 이후로 가수활동을 그만둘거에요.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웨딩플래너로 이직한 후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패티 김은 국내에서는 가수 외에도 뮤지컬 배우와 영화배우로도 활동했고,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오는 가수이자 대중음악계의 이정표와 같은 존재로 활동했습니다.

패티 김은 지금 봐도 굉장히 이국적인 외모로 당시에도 화제였다고 합니다.어디를 지나가면 하프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고, 키도 168cm로 지금까지 큰 키이지만, 그때는 정말 대단한 장신이었을 것입니다.이러한 탈동양인적인 외모가 당시 미8군 클럽에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몸집이 작은 동양 여성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외모 덕분에 눈길을 끌었다.고 본인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런 부분을 뿌듯하게 했습니다.패티 김은 이국적인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 때문에 많은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그리고 일본에서 누들을 찍어왔다. 라는 루머를 비롯해 성형 논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하지만 본인의 말에 따르면 미8군 공연 시절 쌍꺼풀 수술과 코 수술은 받은 적은 있지만 예전의 개성을 잃은 듯 코에 넣었던 보형물을 오히려 제거하고 나머지는 얼굴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라고 성형 소문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실제로 젊었을 때와 현재의 모습을 보면 이중과 젖살이 빠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거든요.

패티 김은

가창력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입니다.

오늘은 가을을 맞는 처서입니다.

패티김의 수많은 대표곡 중에서 오늘은 가을이 오기 전에 가을을 먼저 선물하기 위해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올려볼게요.

https://youtu.be/71igcIQwXRA 오늘 전주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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