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천문학자: 한국의 하늘을 연구한 과학자 이원철

http://aladin.kr/p/wy3tZ 국내 최초 이학박사 이원철의 일생 중 천문학적 발견과 초대 관상대장을 역임한 시기에 집중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들려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암울했던 시절 이원철은 별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다… aladin.kr ‘내 하늘을 연구한 과학자’ 이원철/유연서의 글. 수봉 그림 이강환 감수심, 2021.90쪽.

밤하늘과 우주에 대한 책을 찾다가 발견했다.조선 시대의 홍대영, 이순지, 장영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을 거쳐 1960년대까지 살았던 천문학자들을 다루어 흥미를 끌었다.

생몰년 : 1896-1963

구한말에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고 신식학교를 다녔다.보성학교와 선린상고를 다녔다고 하는데 선린상고를 나왔다면 당시에는 바로 은행에 취직해서 승승장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연희전문학교 수물과 1회 입학생이 되었다.수학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교수가 풀지 못하는 문제도 푸는 실력을 가졌다고 한다.졸업 후 미국인 교수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 연희전문이 전문대학이어서 학부에서 다녔고 192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논문은 독수리자리에 있는 에타별이 맥동변광성임을 밝혀 당시 새로운 샤플리의 가설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었다고 한다.변광성은 밝기가 변하는 별을 가리키는데 전통적으로 쌍둥이 별이 서로를 가리고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1914년 미국의 샤플리가 항성이 수축 팽창하면서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화한다는 맥동설(pulsation 소대교)을 확립하고 이 착설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이원철의 연구도 그 중 하나였다.

잘 모르는 맥동변광성이라든가 하는 내용을 쓴 이유는 그 결과를 얻기 위해 그가 반사망원경과 프리즘 분광기를 이용해 71회에 달하는 관측을 했다니 잠을 잘 잤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실수는 없었을까.조금만 힘들면 중도지폐를 하고 싶은 나는 이런 면이 존경스러우니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해서다.

책은 천문학자로서 그의 업적은 물론 한학을 배운 그가 지도교수의 조선시대 ‘천상열차 분야 지도’ 연구를 돕는 것을 통해 전통 과학을 강조하고 과학 대중화를 위해 종로에 있는 YMCA에서 대중 강연을 했다는 것도 알려준다.

반일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연희전문교수직에서 물러난 뒤 해방 후에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관상대를 만든 것과 그 이유인 한국의 역법을 갖기 위해 연세대에 기상학과를 설치한 것 등도 다루고 있다.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2년 2월 6일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소행성 ‘2002DB1’을 원철성으로 명명하고 ‘대한민국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책 뒤에 우리 과학문화재와 천문관측기구가 나오지만 개성의 고려시대 첨성대가 있음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원철이라는 학자의 이름을 모른다면 당연히 검색도 하지 않을 텐데 아이 인물 이야기가 인물 찾기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문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를 첨부했으면 좋겠다.참고 자료와 찾기는 논픽션의 기본인데.더 읽어볼 자료를 첨부해주면 더 좋고.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의 상세 내용이 있다.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75462&cid=63945&category Id=63945 고 이원철 국립중앙관상대 초대 대장(1896~1963)은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로서 천문학사 최초의 영어논문 ‘한국천문학사’를 발표해 한국천문교육 및 연구 활성화에 기여했다. | |외국어 표기|| David W.Lee(영어)| | 출생| 1896년 8월 18일, 서울| 사망| 1963년 3월 14일, 서울| 유공자 지정| 2017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지정(자연과학 분야) | 학력| 1919년 연희전문학교 수학물리과 졸업 1922년 미국 앨비온대학교(Albioncollege) 졸업…ter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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