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심채경 / 문학동네

내가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데 그 중 하나는 남의 일기장을 당당하게 보는 재미, 다른 하나는 한 분야만 파고든 내 세계를 넓히는 재미.

대학 신입생 때 들어간 동아리는 천문학 동아리였다.이른바 별 보는 동아리였는데 당시 회장의 게으른 건지 귀찮은 건지 하기 싫은 건지 그 밖의 이유로 술만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나름 로맨틱했던 동아리에 있다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됐는데 사실 오래 전에 사놓고 딱히 손이 안 가서 안 읽었는데 요즘은 소설만 읽다가 머리를 환기시킬 겸 이과적인 책을 시도해 봤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미리 스포일러를 하면 망원경으로 별을 보며 얻는 것보다 이미 탐사선이나 기타 우주선 등에서 얻은 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제가 책을 읽는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이분도 별로 저와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른바 이과 실패하면 이미지도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엄마이자 아내이기 전에 천문학자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에 여자이며 그렇게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 직장에 다니는 내가 공감하고 있는 이 현실에 조금 슬프기도 하고..

책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2부 과학형 인간입니다. ‘해가 지는 걸 보러 갈게요’ 이 부분이다

해가 지는 것을 보러 갑니다.

다른 분야에서 오랫동안 공부해 온 사람들은 그 사람만의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는 그들 사이에 자주 사용되는 언어를 실생활에도 적용하는데, 이 에세이에도 그런 부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좋았다

이과라면 딱딱한 이미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로맨틱한 글이 많았던 작가가 천문학자라서 그런지

내가 어린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거야.내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맞춰 지평선 위에 살포시 걸려 있는 태양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 속으로.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160P 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빼놓을 수 없는 어린왕자가 벌써 로맨틱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로맨틱한 생각을 하시다니.

아마 어린왕자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별에는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노을 속을 향해 걷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질녘을 보러 가는 어린왕자를 만나면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왜 슬픈지 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것이 43번째인지 44번째인지 추궁하지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의 환율도 듣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그가 슬플 때 바로 해가 지라고 명령할 수는 없지만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 은근히 알려준다.천문학자는 생각보다 꽤 도움이 된다.165P

물론 2부 제목답게 작가가 이과형 인간임을 알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이 책을 읽는 재미가긴 하다.

문과인이라면 한 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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