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투보 화산 폭발, 라키 화산 폭발, 프랑스 혁명,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 재가
1993년 일본은 장마가 끝난 뒤 가을을 맞이하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 그리고 일본 역사상 매우 희귀한 냉해가 덮쳤다. 종전 직후라면 몰라도 고도 경제성장 이후 쌀이 부족한 상황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쌀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는 중장년층은 크게 동요해 가전양판점에서 쌀이 판매될 때 장사진을 이뤘다.
이 냉해의 원인은 1991년 필리핀에서 발생한 피나투보 화산 폭발이었다. 폭발의 영향은 국경과 관계없다. 또한 멀리까지 막대한 피해를 미치는 것은 폭발 직후가 아니라 몇 년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즉 분화 직후 화산재 등의 화쇄류와 용암의 피해를 모면했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더 심각한 피해는 몇 년 뒤에나 찾아올지 모른다.
화산 폭발이 역사를 움직인 사례로는 1783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이어진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 폭발(실제로 8개월이나 계속됐다. 대규모 분화로 지진을 수반해, 약 25킬로미터의 금이 갔다. 용암대지가 생성된 유일한 분화로 아사를 포함한 약 20%의 주민(1만 명 이상)과 약 70%의 가축이 폐사했다. -역자)와 1789년 7월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을 들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라키 화산이 폭발하기 전부터 흉년이 들었으며, 1775년 봄에는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곤경에 처한 군중의 무차별적인 약탈이 아니었다. 방앗간이나 빵집을 털기까지는 마찬가지였지만 자신들이 값을 정해 값을 치른 뒤 떠나는 지극히 온당한 행위였다. 약탈 대상은 사재기나 은닉이 의심되는 가게로 한정됐다.
하지만 라키 화산 폭발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헌법 제정이 이뤄진 국민의회 통과 후에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사람들의 분노가 쌓였다. 1789년 10월 4일부터 파리의 팔레 루브르 궁전 북쪽에 위치한 프랑스의 역사적 건물로 현재는 정원과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역자)에게 여성들이 모여 베르사유에 가서 왕에게 빵을 달라고 말하자며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파리의 팔레 루아얄은 저택 주인인 오를레앙 공이 정원을 에워싸도록 지은 건물로 이 무렵에는 레스토랑, 카페, 상점 등이 즐비한 유명한 번화가였다.
기세가 오른 다음날 여자들은 저마다 무장하고 베르사유로 향했다. 가는 곳마다 합류하는 여성도 적지 않아 베르사유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그 수가 7000명에 이르렀다. 합류를 희망하는 남성도 많았지만 여성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정치적 행동도 아니고, 오로지 순전히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이 행렬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남성들은 늘 협상이나 흥정을 핑계로 시간을 허비해 왔고 여성들은 그 모습에 불신감이 쌓여 함께 싸우기를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이 어떻든 의회로서도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좌시할 수 없어 국민위병(1789년 프랑스혁명 초기 질서유지와 자위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민방위대다. 각 도시에 하나씩 배치되어 1872년까지 존속하였다. (역자)의 출동을 명하였다. 여기에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해 2만여 명의 남성들이 베르사유에서 속속 모였는데, 이때 이미 여성들은 궁궐 안으로 몰려와 모두들 어려움을 호소했다. 의회도 이 틈을 타 국왕에게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 재가를 요청했다.
루이 16세 Louis XI는 당초 피난과 군에 의한 진압도 고민했으나 국민 위병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세가 꺾이자 의회에는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을 승인하고 여성에게는 밀가루 공급을 약속했다.
이렇게 고비를 넘겼나 싶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다음 날 국민위병과 근위병 사이에 발생한 작은 충돌을 계기로 군중은 다시 궁궐 안으로 몰려들었다. 사태를 수습하려고 루이 16세는 발코니에 나타나는 순간 사방에서 왕을 파리로!라고 외쳤다.
결국 국왕 일가는 파리로 이송되어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여성을 거리로 이끄는 데는 정치적인 이유보다 눈앞에 닥친 아사의 공포가 더 컸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밀 부족에서 비롯됐지만 식량 부족 사태를 심각하게 만든 것은 라키 화산 폭발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