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꼭 듣도록 되는 크고 주는 음악이 있습니다.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는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이 송년 음악회에서 매년 공연을 하지만 저도 예전에 현장에서 두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특히 제4악장은<환희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합창이 겹치면서 너무 거창하고 감동적입니다.그런데 이<환희의 노래>가 독일의 시인 실러의 시는 것 정도는 알고 있고, 그 구절을 우리말로 부분적 읽은 적은 있지만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본 적은 없습니다.이번에 또 이 작품의 공연 현장에 가는데, 이번은 이 합창 부분의 내용을 충실히 알고 갈 생각에 이 블로그의 작업을 개시했습니다.
*Schiller—”Ode to Joy”— Beethoven<환희의 노래>의 독일어 제목은<An die Freude>으로서 이를 영어로 직역하면”To(the)Joy”(환희에)입니다.그런데’송가(송가)’라는 말을 보충하는 이유는 이 독일어 제목을 영어로 의역하면”Ode to Joy”(환희에 붙여송가)가 적절하기 때문입니다.영시로 뛰어난 ‘송가’를 많이 남겼다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의 작품에 “To Autumn”이 있지만 이것도 ‘Ode to Autumn’의 의미입니다.
Ode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작된 시(음악)양식으로 처음에는 아주 엄격한 3부 구성(strophe, antisrophe, epode)이 되었습니다.그 중에는 ‘합창'(chorus)에서 열리는 부분도 있지만 다음에 실러의<An die Fruede>을 클릭하고 보면’chorus’부분이 뚫렸다(stanza)의 마지막에 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Ode는 이후 이러한 형식적인 요소는 약해지고, 대상(물)을 찬양하는 감정적으로 매우 고양된 시를 주로 가리키게 됩니다.
Ode형식으로 찬미되는 대상은 사물, 동물, 신, 계절 등은 물론, 추상적 관념인 경우도 있습니다.키즈를 예로 들면,”Ode on a Grecian Urn”은 옛날 도자기라는 ‘사물’,”Ode to a Nightingale”은 나이팅게일 사라는 ‘동물’,”Ode to Psyche”은 ‘여신’,”Ode on Indolence”은 ‘게으름’이라는 ‘관념’, 그리고 이미 언급된 “To Autumn”은 ‘자연’혹은’계절’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An die Freude> 실러의 이 작품은 1785년에 집필되고 이듬해 잡지에 발표되었습니다.훗날 1803년에 일부 재검토된다 그의 사후 1808년 수정본이 출판되었습니다.최종본은 원래 8행과 chorus 4곳에서 열린 12행의 나이(stanza)이 전부 8개로 총 96개입니다.그런데 초판본에는 하나의 인연이 더해져서 모두 108행이 있어요.이 시의 독일어 원문과 영어 번역은 다음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참고: https://en.wikisource.org/wiki/Translation:Ode_to_Joy) )
그런데 베토벤은, 쉴라의 <환희의 송가>최종본 98행 중 36행을 곳곳에서 발췌해서, 그의 교향곡 제 4악장의 「합창」의 가사로 씁니다.다음은 쉴라의 자필 원고의 일부입니다.

(출처:en.wikipedia.org; 이후 이 출처에서 나온 이미지는 따로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말을 미리 밝히는 것은 미안하지만, 쉴러는 훗날 이 작품이 ‘현실과는 동떨어진'(detached from reality) 실패작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쉴러는 1800년 이 작품 집필의 계기가 된 오랜 친구(Christian Gittfried Körner, 1756~1831, 법률가)에게 이 작품은 ‘우리 둘 사이에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세상에 대해, 또한 시 예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of value maybe forust)고 칭송됩니다. ‘우리 둘 사이에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시 예술시’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Not futoffutoffu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oforu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 흔히 ‘프리드리히 쉴러’로 불리는데, 본명은 이렇게 꽤 깁니다.그의 초상화부터 보겠습니다.

“그는 극작가, 시인이자 철학자라고도 불립니다.<Wilhelm Tell(1804)>등 만년의 희곡들이 대표작입니다””특히 쉴러는 1794년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 the, 1749~1832, 아래 사진)와 친분을 쌓으면서 문학적, 사상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바이마르 고전주의(Weimar Classicism)라 불리는 문예사조를 함께 이끌었다고 문학사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답답한 일행의 추가 설명이 필요없는 음악가입니다.다음은 그의 초상화입니다.

그의 음악은 고전주의에서 로마주의 시대로 확장되고 있어요.그는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곡을 남겼지만 대중적으로는 교향곡(symphony)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교향곡 제3번 <영웅>, 제5번 <운명>, 제6번 <전원>, 그리고 제9번 <합창> 모두 걸작입니다.베토벤 말년이 되는 1822년부터 1824년 사이에 작곡된 교향곡 9번은 ‘합창 교향곡'(choral symphony)이라는 세부 장르로 구분되는데, 9번 별칭 자체가 ‘합창'(Choral)입니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쉴라와 베토벤 필자가 쉴라와 베토벤의 운명적인 관계를 느낀 것은 제 이전 블로그 센트럴파크 문인의 길(Literary Walk)을 준비하면서부터였습니다.(참고:https://blog.naver.com/mskim566/222551630911) 다음 지도를 먼저 보겠습니다.

센트럴 파크의 중심부에는 위쪽 지도상에 빨간 ‘큰길'(The Mall)이 있습니다.”그 아래 문인들의 동상이 여럿 있는데, 이 길은 ‘문인의 길’ (Literary Walk; 또는 ‘문학 산책로’)이라고도 합니다”그런데 이 길 상단부에 쉴라와 베토벤의 동상이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함께 있는 것을 봤어요.베토벤(왼쪽)과 쉴라(오른쪽)의 동상을 보겠습니다.



https://youtu.be/rOjHhS5M tvA
2. 1989년 베를린 축하 콘서트 (1989 The Berlin Celebration Concert)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으로 미국의 레너드 번스타인 (1918~1990, 아래 사진)이 지휘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특별한 것은 <Odeto Joy>를 <Odeto Freedom>으로 바꾼 것입니다.네 번 나오는 “Freude”(=Joy)를 “Freiheit”(=Freedom)로 바꾸죠.https://youtu.be/Hn0IS-vlwCI
3. 베를린 필하모닉(Berlin Philharmonic; Berliner Philharmoniker)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34년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Herbert von Karjan, 1908~1989, 아래 사진)에 의해 1977년에 열린 공연실황입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게 제일 완벽했던 공연 같아요특히이동영상에는4악장에한글자막이달려있어서굉장히도참고가됩니다.https://youtu.be/vFlTdfO_Hxw
*대중음악 <A Song of Joy> 베토벤 교향곡 9번 멜로디를 이용한 <A Song of Joy>라는 친숙한 대중음악도 함께 들어보세요.스페인 가수 작곡자 미구엘 리오스(Miguel elos, 1944~아래 사진)가 1970년 발표한 곡입니다.

스페인어 제목은 “Him no de laalegría”(=Hymn of Joy)인데, 영어판의 제목은<A Song of Joy>입니다.이 노래를 들어 볼게요.https://youtu.be/QPvp_OlGIho
이 노래는 역시 스페인 출신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 1943~)가 1994년 앨범<Crazy>에<Song of Joy>라는 제목에서 발표했습니다.https://youtu.be/cq_3iIJUOc4이제 이 노래의 영어 가사를 보지만 전체 번역은 하지 않고 주목되는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매기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Come, sing a song of joyFor peace shall come, my brother.Sing, sing a song of joyFor men shall love each other.*’평화'(peace)와 ‘인류애'(men shall love each other)가 강조되고 있다.
That day will dawn just as sureAs hearts that are pure, are hearts set free.No man must stand aloneWith hands held out before him.*That day will dawn just as sure…:그날은~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동틀 것이다.*As hearts.set free:=As pure hearts are sure, and free hearts(← hearts which are set free)are sure(순수한 마음과 자유로운 마음이 확실한 것처럼)*No man … before him:’그 누구도 내 앞에 손을 뻗친 채 혼자 설 리 없다.’ 남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남들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임. ‘독불코필유링(덕부 고필 유린)’라는 논어(논어)의 한 구절을 연상시킨다. ‘hands[which are]held out’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버전에는 ‘outstretched hands’으로 바뀌고 있다.
Reach out and take them in yoursWith love that endures forevermore.Then sing a song of joyFor love and understanding.*Reach out and take them(=other’s hands)in yours(=your hands):손을 뻗어 그들의 손을 너의 손 안에 잡아라.*love and understanding:앞에 언급된 ‘평화'(peace)와 ‘사랑'(love;인간애, 동포애)에 이어'(상호)이해'(understanding)이 중요한 덕목으로 추가되고 있다.이 단락 이후 연주 부분이 이어진다.
Come, sing a song of joyOf freedom, tell the story.Sing, sing a song of joyFor mankind in his glory.*’환희’은 구체적으로 ‘자유'(freedom)의 기쁨이며 이는 ‘영광의 인류'(mankind in his glory)에 대한 환희에 나타난다.
One mighty voice that will bring A sound that will ring forevermore.Thensing a song of joy For love and understanding.[bridge]*Onemighty voice… fore:”영원에 음성을 가져오는 거대한 하나의 목소리”,”One신라, voice”은 자유 앞의 목소리*마지막 두 문단이 변주되고 합창이 섞여서 반복된다.
- 덧붙여개념 대중 가요<ASong of Joy>은 “평화·자유·사랑·이해”를 바탕으로 한”인간 환희”로 불리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미래의 이상세계에서 일어나는 「환희」라고 생각합니다.베토벤과 쉴러의 ‘Odeto Joy’에서는 ‘신의 환희’가 기본입니다.환희는 우주와 인간, 신이 존재하는 이유처럼 강조됩니다.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이 환희는 상실되었기 때문에 베토벤과 쉴러에서는 사라진 ‘환희’의 회복을 애타게 갈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인간 세계는 이런 원초적인 환희와 함께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워즈워스(17701850아래 사진)의 평범하지만 진실한 시구를 떠올립니다.

<송가: 영혼 불멸성의 암시>(“O 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 “1804)의 마지막 네 줄입니다.Thanks to the human heart by which we live, Thanks to its tenderness, its joys, and fears, To me the me anest flower that bl
워즈워스의 이 시에는 ‘joy’ 혹은 ‘joyous’라는 단어가 9번이나 나옵니다.그만큼 그도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에 ‘환희’를 갈망합니다.그러나 ‘환희’와 ‘공포’가 공존하는 ‘약한 인간의 마음'(tender human heart)의 방법이 없음을 최종적으로 인식시킵니다.오히려 이 약한 ‘인간의 마음’이 있다는 것에 세상과 자연과 동료에게 공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워즈워스는 이 <영혼불멸 송가>를 쓴 다음 해에 <의무송가>(“Ode to Duty, “1805)라는 시를 지었습니다.첫 소절부터 시인은 ‘의무’에 대해 ‘신의 목소리의 엄격한 딸'(Stern Daughter of the Voice of God!)이라고 외쳐댑니다.이는 쉴라의 시에서 ‘환희’를 ‘낙원의 딸'(Daughter of Elysium)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조됩니다.그리고 그 마지막 구절에서는 ‘진리의 빛 속에서 나는 너를 (즉, 의무)의 예속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And in the light of truth thy Bondman let me live!)라고 외칩니다.평범한 현실에서 삶의 진리를 찾으려는 워즈워스의 시선에서는 ‘환희’가 아니라 ‘의무’가 우리를 지탱해 가는 덕목자로 있을지 모릅니다.<환희의 노래>를 생각하면 필자의 뇌리 한쪽에서는 2018년 104세까지 활동한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들(David Goodall, 1914~2018, 아래 사진)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면서 스위스에서 ‘자발적 안락사(voluntary ehthanasia)’ 혹은 ‘조력자살(assisted suicide)’로 생을 마감했습니다.(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David_Goodall_(botanist)) 과연 그가 끝까지 들은 ‘환희’는 이 땅 위의 것이었을까요?아니면 영원한 신의 세계에 대한 것이었을까요?
다시 돌아와 쉴라의 『환희의 송가』 초판(1785년판) 마지막 네 줄을 읽겠습니다.Eine heitre Abschiedsstunde ! Süßen Schlaf im Leichentuch ! Brüder , einen sanften SpruchAus des Totenrichters Munde . A serene departing hour ! Sweet sleep in the shroud ! Brothers — a mild sentenceFrom the final judge ! 평온한 이별의 시간 ! 壽衣 に 包まれた 甘い 眠り !형제여-최종 심판자의 입에서 잔잔한 판결이 나오기를!
학대를 꿈꾸었던 ‘환희’는 이러한 ‘환희’였던 것은 아닐까요?그런데 쉴라는 왜 이 문구를 수정판에서 잘라냈을까요?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심정을 품고 올 연말에 베토벤 9번 <합창>의 <환희의 송가>를 현장에서 들으러 갑니다.

(출처:kbssymphony.org)
<짧은후기>와 같은 공연에 다녀왔습니다.지휘자 정명훈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그저 모든 게 좋았다는 말만 남깁니다.<환희의 송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환희로의 초대>(Invitation to Joy)였습니다.공연 후에 장면 하나 올려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