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강원도 원주시 미군 AH-64D 아파치 헬기 추락사고 – 블랙박스 대화내용 + 보고서 확보

사고 현장 사진 강원소방본부 촬영 2015년 11월 23일 오후 6시 22분쯤 미 육군(주한미군) 제2보병사단 제2전투항공여단 제4항공공격정찰대 소속 AH-64D 롱보우 아파치 헬기 1대(등록번호: 08-05562)가 훈련비행 중 송전탑 전선을 들이받은 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531번 지방도로(자작고개)에 추락하여 조종사 2명이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사고 헬기가 미군 군용기였기 때문에 한국 영토 내에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조사권은 미 육군에 있었습니다. 미 육군 내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기관인 미 육군 전투준비실(안전센터)은 자체적으로 사고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보고서를 내부적으로 공표한 후 2017년 전투준비실 정기간행물인 Flight Fax에 이 사고를 소개했습니다.

미 육군 전투준비실 홈페이지 링크 : https://safety.army.mil/

safety.army.mil

이 Flightfax는 미국 육군의 항공 사건 사고 사례를 소개하고 예방책 등을 소개하는 월간 정기간행물입니다.

2017년 Flightfax 링크 : https://safety.army.mil/Portals/0/Documents/ON-DUTY/AVIATION/FLIGHTFAX/Standard/Combined_Year/2017_Flightfax_Combined.pdf

대부분의 국가가 군용기 사고 조사 보고서를 비공개 자료로 다루고 있으며 군용기 사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일부 서방 국가들은 군용기 사고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미군은 상당히 개방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사고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방대한 자료를 일반에 공개합니다. (사고조사기록물이라고 하며, 조종실 내부의 블랙박스 내용, 실험분석보고서, 사고조종사기록, 관계자진술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시행 중인 FOIA(정보자유법) 덕분입니다. 이 법에 따라 전세계 누구나 미국 정부/행정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관계자의 진술서는 민감자료로 취급되어 비공개가 되지만, 미군은 특별히 민감한 사안이 아니면 진술서도 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관계자들로부터 진술을 받을 때 가장 먼저 “귀하가 한 진술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제3자에게 공개될 수 있다”고 고지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종실 내부 블랙박스(CVR) 녹취록도 공개를 원칙으로 합니다.

(이러한 공개정책은 미군뿐만 아니라 민간사고조사기관인 NTSB(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에서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미 공군의 진술 조서입니다. (다만 NON-PRIVILEGED (기밀이 아니라는 뜻)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특수한 상황에서는 진술이 PRIVILEGED (기밀)로 분류되어 비공개 자료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조사관이 관계자로부터 진술을 청취하기 전에 진술에 관한 비밀유지는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귀하의 진술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될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어요?’라고공지하는내용입니다. (매진술조서마다제일처음에들어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군사 자료의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미군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면서 민감 자료를 검열하는 방식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정보자유법의 힘이 상당히 강한 것 같습니다.

미군 군사조직 중 미 해군, 공군, 해병대와 해안경비대는 항공사고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선제 공개하지만 미 육군은 상당히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미 육군 전투준비실에서 항공사고 보고서 항목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국방부 직원 코드를 입력하도록 표시됩니다. 사실상 군내공개(대외비) 취급입니다.)

그래서 미 육군의 항공사고 조사보고서를 찾는 건 포기했는데… 구글링을 하던 중 미 육군 루이지애나주병 소속 UH-60M 블랙호크 헬기 추락사고 사고조사 보고서와 사고조사 기록물 자료가 한 언론인의 FOIA 청구에 따라 2015년 10월 22일 공개된 걸 확인했습니다.

다음은 해당 사고 보고서가 공개된 미군 특수작전사령부 자료실 링크입니다.

https://www.socom.mil/FOIA/Pages/MARSOC-LAANG-UH-60-Helicopter-Incident.aspxFOIAwww.socom.mil

사고 헬기의 항적도입니다.이 사고는 2015년 3월 10일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사고로 안개 낀 야간에 이륙한 직후 조종사가 비행착각(공간정위 상실)에 빠져 자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수를 급격히 숙여 호수로 추락했습니다.탑승자 11명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기체등록번호 : 13-20624)

위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종실 내부의 블랙박스(CVR) 대화 내용도 모두 공개됐습니다.

그래서 나도 원주시 아파치 헬기 추락사고 보고서와 블랙박스 대화 내용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미 육군 전투준비실은 정보공개 청구 3주 후 검열된 사고 조사 보고서와 블랙박스 대화 내용을 공개해 주었습니다. 단, 사고조사보고서 본문 중 분석/결론/권고사항 부분은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여 모두 검열되었습니다. 33페이지 중 17페이지가 전부 검게 되어 있었어요.

아래는 미 육군에서 보내온 정보공개통지서의 일부로, 미 육군의 안전보고서는 사고예방 프로그램에 의해 보호되는 문서이며, 군 내부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공개 처리를 한 것으로 통보되었습니다.

해당 부분의 비공개는 개방된 토론과 사고 조사 과정의 평가를 촉진시킴으로써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므로 양해해 달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청구를 처리해 주신 전투준비실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개된 사고 조사 보고서입니다. 16페이지 이전에 비공개된 내용은 관련자 성명, 작전에 투입된 항공기 호출 부호, 상세 소속, 시신 상태 등 민감한 정보뿐입니다.

16페이지부터는 분석, 결론,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전부 비공개가 되었습니다. 단, Flightfax에 간단한 분석/결론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미 육군만이 이런 정책을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 공군의 경우는 대외 공개용과 군내 활용용 두 종류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대외 공개용 보고서에는 사실 정보와 간단한 분석, 결론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내 활용용 보고서에는 자세한 분석과 결론, 권고사항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미 공군에서 비공개 대상 정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 공군의 군 내용 보고서도 사실 정보 부분은 부분 공개 가능) 미 해병대와 해군은 분석 내용과 결론, 권고 사항을 일부 공개합니다.

다음은 사고 헬기의 블랙박스(MDR)에서 추출한 조종실 내부의 대화내용(녹음기록)입니다.(아파치 헬기는 정비자료 기록장치(Maintenance Data Recorder, MDR)라는 장치가 블랙박스 역할을 합니다. 본래 정비 목적으로 비행자료/조종실 내부의 음성을 기록하지만 사고조사에도 활용합니다.MDR에서 추출된 음성 자료는 31분 0.4초였습니다.

(2018년 2월 메인 로터가 낙하한 뒤 추락한 일본 육상자위대 아파치 헬기 사고(2명 사망)에서도 방위성이 MDR에서 비행자료를 성공적으로 분석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으로 보아 MDR이 정비 목적으로 설계된 장치이지만 일반 항공기 블랙박스에 준하는 내구도를 가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지 군용장비라서 그런지 실제 사진은 구글링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고 헬기의 호출 부호(콜사인)는 Arch Angel 11이었습니다.

사고기 조종사들은 전선과 충돌하기 약 40초 전에 구름과 폭풍우가 있다는 대화를 나눴고 충돌 불과 2초 전에 전선을 발견해 ‘Wires(전선)’ ‘Wires(전선입니다)’라는 대화를 나눴습니다.충돌 순간(한국 현지시간 6시 21분 28초) 뒷자리에 앉은 기장이 욕설을 했고(녹음기록상 삭제), 이후 충돌음, 조종사의 신음과 경고음(로터 RPM 저하, 비프음, 엔진 관련 경고음)이 녹음됐습니다.

사고 헬기의 MDR에 녹음된 충돌음에 따르면 6시21분28초(녹음기록상 30분52.596초)에 송전탑 전선에 처음 접촉한 이후 6시21분33초(녹음기록상 30분57.020초)까지 약 4.4초 정도 전선에 접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고 지점의 송전선 중 가장 윗선의 전선 2개가 끊어졌다는 것)

녹음 종료 3.4초 전에는 1번(왼쪽) 엔진 관련 경고음이, 추락 2.7초 전에는 2번(오른쪽) 엔진 과속 경고음이 작동했습니다. 이는 사고 헬기의 메인 로터가 전선에 의해 손상돼 떨어지자 엔진에 가해지는 부하가 갑자기 낮아져 엔진이 순식간에 빠르게 회전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2016년에 발생한 노르웨이 슈퍼퓨마 헬기 사고에서도 메인 로터가 통째로 낙하하면 엔진 터빈 속도가 100%에서 115%까지 순간적으로 상승한 사례가 있습니다.)

사고 헬기는 송전선에 접촉한 지 약 3초 만에 150미터 너머 도로에 추락했습니다. (6시 21분 36초) 날개를 잃은 헬기는 양력을 유지할 수단이 없어 말 그대로 공중에 던져진 쇳덩이가 되어 자유낙하했고,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수직(-90도)으로 도로에 던져졌습니다. (수직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추락 직전 조종사들에게는 땅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블랙박스 녹음 종료 시점이 추락 시점이라고 추정하면 사고 헬기의 추락 당시 속도는 시속 220㎞ 이상입니다.

사고 지점에는 사고 후 5년이 지난 현재도 아직 그날의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다음 로드뷰 링크 : http://kko.to/n0XbuULD0)

먼 이국 땅에서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첨부파일: 사고헬기 마지막 5분 MDR 녹음기록, 사고조사보고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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