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 태양계, 대우주천체무한대 4편 – 박두진

□ 은하계, 태양계, 대우주천체무한도 – 박두진

원제:은하계,태양계,대우주천체무한도

너는 돌이 아니라 별이다. 별이 아니라 꿈이다. 꿈이 아니라 불이다. 불이 아니라 분노다. 분노가 아니라 참는 것이다. 인내심이 아니라 포용, 포용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라 고기가 아닌 영혼 영혼이 아닌 피의 덩어리 그리움의 덩어리 기다림 외로움 생명과 생명의 뼈 뼈 뼈의 영원 꿈의 영원 알맹이 그 억원의 이른 아침 미립자 빛 핵 빛의 핵 빛 천지 우주의 무한 있음 무한 있음 내 앞에 있고 만남 초자연 속 자연 속 초자연 속 초자연 속 눈부신 실존이다. 억만 개의 태양 덩어리 그대 안에 빙글빙글 돌고 억만 별의 나라 그대 안에 윙윙 울리는 그대 하나의 돌 나도 하나의 돌 돌 돌 돌이 껴안고 엉엉 울어.

박두진 전집, 범서사, 1984

□ 이상한 나라의 꿈 – 박두진

방울방울 눈은 눈으로 얼음이 얼어서 하얗게 얼고 꽃은 꽃으로 붉게 얼음이 얼고 꽃으로 얼고 초목은 나무숲은 숲에서 얼음이 얼고 파랗게 얼고 바다는 바다에 파랗게 물고기는 물고기로 팍팍 비늘 신선한 채 하늘을 나는 새들은 새들의 날개짓으로 날며 얼어붙고,

밤은 밤으로 펑펑 검고 낮은 낮으로 눈부시게 햇살 밝고 새벽은 새벽 노을로 탁탁 얼고 안개는 안개로 가득 찬 소나기는 소나기 우뢰는 천둥번개 무지개로 얼음 얼고 구름은 구름으로 멀리 떨어진 별자리는 은하로 얼음 얼고 얼고

언어는 언어, 마음은 마음, 꿈은 꿈으로 하얗게 얼어붙고 역사와 문명, 사랑과 증오, 향락과 탐욕 횡포와 억압 불안과 공포, 저항 인종과 체념, 전쟁과 살육 절망과 허무 행복과 불행, 눈물과 한숨, 희망도 얼어붙고 평화와 자유 독재와 폭력도 얼어붙고 음악과 춤, 포옹과 키스도 얼어붙고,

지구덩어리 달덩어리 억만성과 별우주천체 일체 있고 무한영원 그 영원도 얼음 얼고 얼고 태양덩어리 빨갛게 타는 태양덩어리 얼음 속에 빨갛게 얼어붙고, 그때 어쩌면 하나님의 오이가 앗 높이 혼자 울고.

박두진 전집, 범서사, 1984

□ 자화상 – 박두진

돌과 돌이 굴러 나를 때리거나 모래와 모래가 떠내려가 나를 때리거나 파도와 파도가 굽이쳐 나를 때리거나,

너무나 긴 귀찮은 세월,

햇살과 햇살이 나를 때리고, 달빛이 나를 때리고, 캄캄한 밤이 나를 때리고, 별빛과 별빛이 나를 때리고,

아아, 뿌리는 낙화가 꽃잎이 나를 때리고, 바람이 나를 때리고, 가랑비, 저녁 그을림, 진눈깨비가 나를 때리고, 모레 눈보라가 나를 때리고, 우박이 나를 때리고,

그, 분노가 나를 때리고 회의와 불안, 고독이 나를 때리고 절망이 나를 때리고,

아니 사랑이 나를 때리고 끝없는 후회 끝없는 기다림이 나를 때리고,

양심과 정의, 지성이 나를 때리고, 진리와 평화 자유가 나를 때리고, 동포가 나를 때리고,

끝없는 아름다움 예술이 나를 때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말씀이 나를 때리고.

속수석열전, 일지사, 1973

□ 그 고독 – 박두진

당신을 항상 우러러보지만 당신이 있는 곳을 모르겠어요.당신의 자애로운 음성을 접하지만 당신 말씀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당신은 나에게서 너무 멀리 있고, 너무 어떨 때는 가까이 계세요.당신이 나를 속속들이 안다고 했을 때, 나는 나를 더 알 수 없고 당신이 나를 모른다고 했을 때 비로소 조금은 나를 알아요.이 세상 모두가 정말 당신 것, 당신이 올 때만 의미 있고 내가 나일 때는 의미가 없는 것은 당신이 당신인 당신을 위해서입니다.나는 당신에게서만 나를 찾을 수 있고, 나에게서 당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밤에도 낮에도 당신 때문에 사실 울고 나 때문에 당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천지에 나만 남아 나 혼자임을 알 때, 그때 나는 내 자신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어디든 저는 저를 가져갈 수 없어요.

□ 잔나비 – 박두진

잔나비의 칼을 휘두르다.꽃밭도 소년도 양떼도 없다.피를 보면 미칠 것 같다는 이치에 취해 어쩔 수 없이 에워싸고 침묵하며 지켜보는 한낮, 이곳에서 잔나비 떼를 휘두른다.심장을 마구 찔러 목숨을 훼손하고 장식 선조가 내린 거울을 부수고 꽃밭을 무작정 명랑하게 밟으며 저녁에 들뜬 풍독한 발정사를 모르고 칼을 휘두른다.

태양, 세이만샤,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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