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분량으로는 세 번째 내용이 시작됩니다 자,빅터프랑클박사가제3회로고테라피세계대회에서발표한내용을바탕으로쓴글이에요.제가 독해력이 아직 너무 낮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3부는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제목으로 내용을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로고테라피의 가장 중요한 내용,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부분에 대한 요약과 정리를 하면서 책에 대한 리뷰를 해보겠습니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이 제목을 보고 인생은 고통스럽고 비극이지만 그것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로고테라피에서는 이 말을 세 가지 비극적인 요소(죽음, 죄, 고통)에도 인간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낙관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로 정의합니다.즉,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낙관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3부에서는 ‘이 모든 비극에도 어떻게 인생에 대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이 비극적인 요소에도 어떻게 삶이 그 자신의 잠재적인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는 것, 이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인생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삶이아무리비참해도그안에어떤의미가있기때문에인생에대해네라고대답할수있다는것이죠. 또한이말은인간이삶의부정적인요소를긍정적이고건설적인것으로바꿀수있는창조적인능력을갖추고있다는전제가되기도합니다. 인간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참한 삶도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죠.이것을 쉬운 말로 바꾸면 자신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삶에최선을다하고살면그삶이비극일지라도낙관으로바뀔수있다는거죠.
그러면 낙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첫째, 비극이 닥쳤을 때 인간의 잠재력이 고통을 인간적인 성취와 실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죄에서 나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일회성 인생에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즉, 비극 속에서도 낙관적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그 비극을 인간적인 성취와 실현으로 바꾸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자원으로 사용하며,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게 있죠. 낙관적인 생각은 명령이나 지시를 받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기자신에게도 낙관적이라고 주문할 수 없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낙관과 같은 의미로 쓸 수 있는 행복도 요구하고 강요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행복은 어떤 것의 결과로 나타나는 법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비극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인간적인 성취를 이루거나 비극적인 삶을 건설적으로 바꿔 놓았을 때 결과적으로 행복과 낙관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행복과 낙관이 목표가 되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된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해질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행복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이유가 있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일단 의미 즉, 이유(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줍니다. 비극적이고 비참한 삶 속에서도 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찾으면 그때야말로 행복한 이유를 찾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시련도 견딜 수 있게 되죠.
그럼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헛된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아주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수용소 같은 상황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보는데, 수용소에서 생활할 이유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은 똥과 오줌으로 범벅이 된 짚더미 위에 가만히 누워있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경고나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저 누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피우기 시작합니다. 죽기위한준비를하는겁니다. 어떤 의미도 잃고 순간적으로 쾌락의 추구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인생의 의미,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상황, 비극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찾으려는 시도가 좌절한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아주 무서운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수용소에서만 일어나는 걸까요? 아니요, 저희 주변에서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청년층에서 스스로를 ‘미래가 없는’ 세대라고 부르며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니요, 이미 많이 생겼어요 말은 안 할 뿐,많은 청년이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삶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마약에 의존하거나 성중독에 빠지는 쾌락주의에 빠지게 되죠.살아야하는이유가왜필요하냐고물어보는사람도있습니다. 살아야할이유없이도충분히살수있다는거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의미가 없지만 수단은 가지고 있는 거에요. 살아야 할 의미는 없어도 살 방법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죽을 이유가 없으니까 사는 겁니다. 그런 삶이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살다보니 의미도 없고 수단도 없는 삶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수단이 없습니다. 실업자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직한 것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쓸모없게 된 것을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된 것과 동일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직업이라는 수단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미궁에 빠지는 것입니다.이들을 치료할 때는 여러 기관, 청소년 기관, 성인 교육기관 등에 가서 무급 봉사를 시키고 치료를 합니다. 그곳에 가서 봉사를 시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치료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돈을 받지 않고도 사람은 어떤 일을 함으로써 내가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죠.실직자처럼삶이무의미하다고느끼는환자는그자체가질병이아니라는점을가지고치료에임해야합니다. 그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환자에게 알리고, 환자가 스스로 의미와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의미를 잃은 것 자체는 질병이 아니지만, 그것이 병을 일으킬 수는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의미를 잃은 것이 병을 일으킨 사례를 보도록 합시다. 저를 포함한 청년층에게 주로 나타나는 집단적 신경증후군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답이 쉽게 나옵니다. 이 증후군이 보여주는 세 단면이 있어요. 우울증, 공격성, 약물중독입니다.모든 우울증이 삶이 무의미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살만한 목적과 이유와 의미를 알았다면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원인은 무엇이든 로고테라피적 치료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저자의 치료법을 소개하고 우울증의 로고테라피적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저자는 자살 기도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 수업 이야기가 자살이 실패한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한 것을 자살로 온 환자들에게 전하고, 자살에 실패한 지 몇 주, 몇 월, 혹은 몇 년이 지난 후 그들은 스스로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며,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고, 삶에 의미가 있었음을 보여주며,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강압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공격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주로 삶의 의미를 잃은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두 번째 특성이 공격성입니다.캐롤라인 우드 셰리프는 보이스카우트 그룹 구성원들의 공격성을 인위적으로 높이고, 어떨 때 공격성이 줄어드는지를 관찰한 결과, 공동 목표에 대한 행동을 할 때 공격성이 줄어드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이 실려 있는 차가 진흙탕에 빠져 있는 상황처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경우 공격성이 누그러진 거죠.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공격성을 보이는 환자에게는 환자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목표를 심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공격성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거죠.
세번째,약물중독으로넘어갑니다. 안네마리 폰 포르스트마이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의 90%가 스스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고 답했고, 스탠리 클리프너가 연구한 약물 중독의 경우 환자의 100%가 만사가 무의미해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즉, 삶을 무의미하게 느끼고 술을 마시게 되고 그것이 삶을 더 무의미하게 느끼게 하고 인생의 무의미함을 느끼기 때문에 또 술을 마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첫 번째 이야기인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로고테라피 치료자는 환자가 전 생애 동안 직면했던 각각의 상황애에 내재된 잠재적인 의미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싶습니다. 즉,인간의전생애에대한의미가아니라한사람이지금겪고있는문제에대한의미를찾아야한다는것이죠.영화를 예로 들면, 영화는 전체적인 내용으로서의 의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고는 알 수 없어요.